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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증인회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눅21:1~)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하나님의 계산법은 ‘액수’가 아닌 ‘비율’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절대적인 수치’로 가치를 매깁니다. 기부금의 액수, 연봉의 크기, 소유한 평수 등 숫자가 커질수록 그 가치도 비례해서 커진다고 믿곤 하죠. 하지만 성경 속 예수님의 계산법은 우리의 상식과는 사뭇 다릅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21장에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예화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헌신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시는지 ‘비율과 마음’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1. 절대값의 함정: 100만 원과 1만 원의 차이

예루살렘 성전의 연보궤 앞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넉넉한 수입 중 일부를 드리는 부자들이었고, 다른 한 부류는 극도로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세상의 관점(절대값)에서 보자면 이들의 차이는 극명합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1,000만 원을 버는 부자가 그중 1/10인 100만 원을 헌금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반면 한 달에 10만 원을 겨우 버는 과부가 1/10인 1만 원을 냈다면, 두 금액 사이에는 무려 100배라는 수치적 차이가 존재합니다. 효율성과 자산 가치를 따지는 세상은 당연히 100만 원을 낸 부자를 더 높게 평가할 것입니다.

### 2. 하나님의 수학: ‘전체 중의 얼마인가’라는 비율의 원리

하지만 예수님의 평가는 놀라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 있던 누구보다 가난한 과부가 “더 많이 넣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에 담긴 ‘비율의 논리’가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1,000만 원 중 100만 원(1/10)을 드린 사람과, 10만 원 중 1만 원(1/10)을 드린 사람의 헌신은 ‘동일’합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가진 것의 십 분의 일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이 그녀의 ‘생활비 전부’였다는 점에 주목해 봅시다. 만약 과부가 수입 10만 원 중 5만 원(1/2)을 드렸다면 어떨까요? 절대 액수는 여전히 부자의 100만 원에 한참 못 미치지만, 마음의 비중으로 따지면 부자보다 5배나 더 큰 마음을 드린 셈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전체 소유 대비 드려진 비중’, 즉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농도를 보신 것입니다.

### 3. 현대적 의미: 내 삶의 ‘비율’을 점검하기

이 교훈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위로와 동시에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가진 것이 적어서 드릴 게 없다”라고 생각하며 위축되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남들보다 많은 액수’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1. 비교로부터의 자유: 하나님은 우리를 옆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가진 100 중에서 10을 드리는 진심을, 수억 원을 가진 사람의 수천만 원과 동일하게, 혹은 그보다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2. 우선순위의 문제: 진정한 가치는 ‘얼마나 남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간절하냐’에 있습니다. 과부는 두 렙돈을 드림으로써 자신의 생존권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더 큼을 증명했습니다.

  3. 작은 시작의 힘: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작은 시간, 소박한 물질, 진심 어린 기도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진심이 담긴 ‘비율’이라면 하나님께는 우주보다 큰 가치로 기록됩니다.

결론: 당신의 ‘전부’를 보시는 따뜻한 시선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는 우리에게 돈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물질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중심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살피시는 분입니다.

남들과 비교하며 작아질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중심을 보시고 계시며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상대적이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따라 온전히 절대적인 비율로 판단하십니다.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풍요로운 ‘두 렙돈’의 축복으로 가득하기를 응원합니다.

이 글이 인생의 참된 가치를 고민하는 모든 분께 따뜻한 해답이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