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 엘리야 안상홍님 설교 녹취록 ]
(욥기 25장 5절)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늘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가장 고귀하고 만물의 영장이라는 아주 특수한 하나님의 축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상으로 보면 아직 6천년이 안되었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우리 인간이 인류시조로 창조 되었다고 하였는데 그만 그것으로 인간이 다 되어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이렇게 영광을 누리는고 하는 것이 우리의 본인 줄만 생각하고 이 세상에서 그저 죽을동 살동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고 날뛰다가 최후에는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고 할 때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과 같이 지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이런 육체를 입고 사시는 그 하나님이 아니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우리가 누구와 같아야만 하나님의 형상이 되느냐 하면 마지막 변화가 되었을 때 완전한 사람이 되었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을 받는 것입니다. 아직은 하나님의 형상이 못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 하셨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지금 현재까지도 하나님은 창조사업을 하고 계신다. 이말입니다. 사업이 끝나질 않았어요. 아직도 사업을 하시고 계세요. 그건 제 말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말씀이 그렇죠.
(요한복음 5장 16절)에서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 일을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라 이 말씀은 1900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그때까지 하나님은 일하신다 하는 말씀은 지금 현재까지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그거에요. 창조사업이 끝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언제 가서 창조사업이 끝나느냐 하면 하나님은 엿새 동안 창세기 1장 1절에서 끝절까지 보면 엿새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엿새 날이라 그런 다음에 비로소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안식하시므로써 이날에 복을 주어 거룩하게 하셨다 그랬어요. 그럼 거기서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일곱째 날이다 하는 말씀 없죠. 거기서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게 그동안까지는 우리가 욥기서 25장 5절에 뭐라고 아까 그랬어요. 네. 벌레인 사람 또 구더기 같은 우리 인생이라 그랬는데요. 지금 현 상태는 구더기와 같고 벌레와 같은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 좀 머리 좀 세상 지식 좀 안다는 사람한테 모 그런 말 하면 구데기는 그건 그렇게 되게 되어있다 벌레도 그렇게 되게 되어있다 우리사람은 벌레보다 좀 나은 계급에 있으니까 구데기가 그렇게 되는 것과 벌레가 그렇게 되는 거 즉 말하자면 굼벵이가 매미 되는거 구더기가 파리 되는거 그거 다 알고 있지요. 그것도 요새 알지 옛날엔 몰랐어요. 그런거 되는거는 잘 알고 있어요. 고거는 벌레보다 좀 나으니까 짐승보다 좀 나으니까 만물의 영장인게 모든 만물의 상태를 다 이해할 수 있게끔 우리에게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성경에는 벌레와 같고 구더기와 같다고 그랬는데 사람이 어떻게 되는건 몰라요. 그래도 이 세상 과학적으로는 사람들도 아는 사람 많았습니다. 한 6-70년 전 옛날 유대인에 유명한 아인슈타인 박사 같은 사람들은 이 앞으로 핵전쟁 핵이 그건 무슨 성경 예언으로 말한 것이 아니고 자기 과학적으로 머리로 짜내서 이 핵이란게 나와가지고 무서운 이 지구를 파멸 시키겠다는거 그 핵을 잘 이용만하면 사람들이 잘 살 수 있지만은 그것을 사람이 사는 것으로 사용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데 쓰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위험한 물건이 된다고 그러지요. 앞으로 50년 이후 면 반드시 이 핵에 대한 것을 갖다가 강론을 한 사람입니다. 또 그분이 또 어떤말 했냐면은 반드시 이세상은 무슨 차원이 몇 차원 우리 세상 3차원 그러면 4차원이 있다는 것은 그분이 말했어요. 4차원 눈에는 안보입니다. 어떤 학자들이 구더기가 파리 된다는 건 그건 우리가 과학적으로나 실지로 그러한 사실을 보니까 되지만은 사람이 어디 죽으면 썩어버리고 마는데 어떻게 되겠느냐. 그러니 이것은 벌써 차원이 굉장히 높은데서 알 수가 있죠.
자!! 그러면 구더기가 파리 되기 전에 어떻습니까. 구더기가 파리되기 전에 내가 이제 변화가 돼서 파리가 되서 한번 날라갈 것 공중에 날라 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까? 예 도저히 그건 가망 없는 말입니다. 굼뱅이가 내가 이젠 매미가 되서 저 녹음이 우거진 나뭇가지로 날라다니면서 내가 노래 부를 수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냐면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변해서 천사가 된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는 겁니다. 아직은 우리가 구더기와 같은 인생입니다. 벌레와 같은 인생입니다. 여기서 이제 변화가 되기까지 우린 전진해 나가야 됩니다.[intense_hr shadow=”2″ /]
이런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6천년 전 물론 그 이상 이전이겠지만은 벌써 계획을 세웠어요.
(에베소 1장 3절) 보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천지만물 창조 이전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의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속 사업은 우리 사람이 죄를 짓고부터가 아니고 하나님이 창조 전에 계획을 세워난 것입니다. 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기전에 각본을 다 떠놨어요. 딱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거까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 구속받을거까지 전부 다 써놨어요. 이거를 통해야만 완전한 진리가 나오지 이거 아니고 아 예수님은 실패했다 1900년 전에 실패했다 뭐 이런 소리나 해가지고 예수님이 안돌아 가셔야 될텐데 돌아가셔서 사실상 돌아가시게끔 다 되어있죠. 안돌아 가시면 구속사업을 못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누구를 부르러 왔다구요. 누굴 누굴 데리러 왔어요.
성한 사람은 의원이 필요 없습니다. 여기 병원이 아무리 많이 있지만은 몸이 튼튼하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거이 필요가 없어요. 죄진 사람을 구원하러 왔습니다. 왜 죄진 사람이 구원을 받아야 되느냐 성한 사람은 예수를 따라가고자 하질 않아요. 의사 선생님이 많이 계시지만은 나 의사 선생님 따라가고 싶지 않아요. 거기 따라가고 싶은 사람들 있어요. 어떤 사람들 그 병에 해당된 사람 그 병의 박사 그 양반들만 따라가는 거에요. 왜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느냐면은요 구속이니까 죄가 안진 사람은 구속을 할 수가 없어요. 구속이란 말은 죄에서 해방을 시켜주는 것입니다. 죄에서 또 내가 죄가 짓지 않으면 예수님 특히 필요가 없어요. 나 죄 짖지 않았는데 뭐 예수님의 피가 내가 뭐 상관이여 이 죄인들만이 그 피가 옛날성서에서 구약성서에서 유월절을 지킨다든지 대속죄일에 속죄제물을 드린다든지 평소에 속죄제물을 드린다든지 이 모든 것은 피로써 피가 없으면 사유함이 없다.
그래서 아담 해와로부터 죄인이 돼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거와 같이 우리 여러분들은 저 하늘나라에서 하늘 나라에서 참으로 하나님의 귀한 아들 딸들이 그 천사세계 그 아주 그 낙원에서 우주천체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의 자연에 얼마든지 우리가 왕래하고 할 수 있었지만은 뭐인가 거기서도 싸움이 생겼어요. 거기서도 반역자가 생겼다고요. 어디든지 반역자가 안 생기는데가 없습니다. 우리 저 왕비열전 같은거 늘 들어보면요 이조 때에도 죽 내려오면서 맨날 싸움이죠. 그 안에서 역적도 생기고 뭐 당파도 생기고 만날 이래가지고 싸움질해요. 우리 역사상으로 아담 해와로부터 쭉 내려오는 이 모든 것이 싸움판이에요.
그렇지만은 속담에 잘되면 충신이요 못되면 역적이라 하는 말 있죠. 바로 선 사람은 충신이 되는기고 잘못 선 사람이 역적이 되는기고 우리가 서도 바른편에 서야 됩니다. 바른편에 서서 우리가 하게되면은 이길 수 있지만은 역적의 편에 서서는 암만 승리할 것 같고 다 자기네들 힘으로 모든 것을 다 정복할거 같지만은 끝내는 망하고 맙니다. 지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승리한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뭐인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사도들 예수님이 주신 생명의 언약을 짓밟아 버리고 그러고 세계를 정복하고 있어요. 자기들은 자칭 누가 나하고 대항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 하고 지금 폼을 내고 있어요. 하지만은 다 기한이 되면 그거 뭐 지푸라기만도 못합니다. 기한이 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실 때에는 그 까짓거 다 아무거도 아니죠.
1900년 전에도 하나님이 세상을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처럼 이처럼 이란 그 참 그 언어의 말씀을 잘 보면 참 귀중한 말씀인데 이처럼 사랑하사 누굴 줬어요. 독생자를 줬어요.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근데 그를 믿었습니까? 물론 믿은 사람들도 있기야 있지요.
그렇지만 예수를 믿은 사람은 오늘날 우리와 같이 그 당시에도 이 세상에선 참 보잘 것 없는 그런 사람들이 되놔서요 그저 뭐 명령 한마디면 그저 이리 도망가고 저리 도망가고 만날 그래 뚜드려 맞고 만날 그랬어요. 붙들리면 그저 가서 뚜드려맞기가 일쑤고 도망댕기기 일쑤고 그랬어요. 하나님 백성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이 세상에는 본 내 힘은 이 세상에 대하여는 못당하는 모양이죠. 결국은 그들에게 먹히고 말았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5절)서부터 보겠습니다.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7절입니다.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서 성도들과 싸워 이겼다”
이것은 약 1700년 전 초기 즉2세기 3세기에 들어서서 성도들은 결국 무엇엔가 짓밟히고 말았어요. 이런걸 다 자세히 잘 말씀해드리지 않아도 잘 알것이죠. 그것이 지금 권세를 지고 있어요. 그러나 지금 창세 이후로부터 지금 이 끝날까지 생명책에 이름이 녹명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한다고 지금 하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사람들 누굽니까 하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해야 되요. 지금 하늘 생명책이 기록되는 교회는 이 지상엔 없습니다. 어디 교회마다 찾아보세요. 생명책이 있는 교회가 있는가 오직 하나님의 교회뿐입니다. 그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 그런 결국 끝에 가서는 짐승에게 경배하고야 말 것입니다.
생명책에 기록했다가도 조금 흐려지는 수가 있어요. 자 3장을 한번 보세요.
(요한계시록 3장 5절)이요 요한계시록 3장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여기 보면 흐려진다는 말씀 이기는 자여야만 되지 이기지 못하면 흐려진다 이것을 명심하셔야만 되겠습니다. 우리는 어떻하든지 이겨야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생명을 주러 온 것인데요. 생명을 요한복한 6장을 한번 더 보구요. 요한복음 6장 47절에서 저번 날 어떤 분이 저번 날 아니라 늘 이런건 종종 묻습니다. 질문한 사람도 있습니다. 믿으면 영생 얻는다고 했는데 뭐 이 여러가지 다 알아야 됩니까 이런 말씀 있어요. 요 믿는 사람 좀 봅시다.[intense_hr shadow=”2″ /]
(요한복음 6장 47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아 얼마나 좋습니까. 누가 저번 날 또 여기 저 방성자집사님 안계시긴 하지만은 그의 주인되는 양반 한번 내가 가서 자꾸 믿으라고하니깬 아 나 믿는다구 어이 믿는 자는 영생을 갖는다는데 나 예수 믿어요 나 예수 믿어요 아 예수 믿으면 예수 시키는대로 해야 될거 아닙니까 아 여기 믿으면 영생 얻는다고 했는데 뭐 나 믿으니까 나 영생 얻는데 뭘 자꾸 그러냐구 자꾸 이런 소리 해요. 여기 보니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그러고 고 다음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그랬어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그럼 뭘 믿으란 말입니까? 이게 생명의 떡을 믿어야 된단 말입니다.
생명의 떡을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않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예수님의 살을 먹어야 됩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 산다는거죠.
이것을 사도바울은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나면은 히브리서 5장을 보세요.
(히브리 5장 6절) “또한 이와 같이 다른데도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여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시는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누가 대제사장이라고요? 대제사장인데 근데 여기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 멜기세덱에 물론 잘 아시겠지만은 이것은 창세기 14장에서 멜기세덱은 어떤 사람인가 여 장로교회 흔히 목사라도 멜기세덱 반차란게 그저 뭐 멜기세덱의 반차라고만 알지 떡과 포도즙을 가지고 와서 생명의 복을 빌어준다는 것은 알 사람이 없습니다. 이건 어느 교회서든지 이건 알 수가 없죠. 창세기 14장 18절에 보면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즙을 가지고 나와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주셨다 이말이죠.
(창세기 14장 18절)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시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또 혹 생각하기를 아브라함이 십분의 일을 주어서 덕된게 뭐있느냐 근데 사람은 요 이 말씀 끝에서 머 있어야만 되는데 고거이 없으니깨 요 쪼금 앞에다 보면 15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뭘 줬어요. 십일조 준 다음에 뭘 받았어요. 예 아들 즉 아들을 준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아들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다고요 하늘의 별의 수같이 많겠다 아 거 얻은거 십분의 일 조금 주고서 얼마나 받았어요. 아이 하늘의 별의 수와 같이 그 많은 별이 말이지 네 자손이 그와 같으리라는 그 큰 것을 받았는데 얼마나 더 받으면 시원할겁니까 이 참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우리가 사람의 말로 다 헤아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것을 다윗이 성령에 감동 시편 110편 보세요 시편 110편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어서 다윗이 뭐라고 여기 했느냐면 장차 멜기세덱의 반차가 올것이다. 그래요
(시편 110편 4절)에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그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분이 누구냐면 예수님인데 예수님이 뭘 가지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느냐면은 유월절 새언약의 떡과 포도즙을 가지고 생명의 복을 불어주신 것입니다.
그 생명의 복이 물론 창세기에서부터 있었지만은 이건 천지 창조 이전에 있었는 거지요. 아담과 해와 때 아담과 해와 창조할 때 뭐라 그랬어요. 아담을 뭘로 만들었어요. 흙으로 맨들어서 거기다 뭘 불어 넣었습니까?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그랬는데 해와는 뭘로 만들었어요? 아담의 갈빗대로 뽑아서 만들었다 참 그 과정이 이상하죠. 같이 흙으로 만들어서 생기를 불어넣으면 되겠는데 왜 산사람의 갈빗대를 잠들게 하고 갈빗대를 뽑아서 만들었는가 이런 것이 다 창조 하나님의 창조 사업의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원리를 가르쳐 주신다 이 말이예요.
아담은 누구라구요? 예 (로마서 5장 14절)에 보면 아담은 후에 오실자의 표상이다. 해와는 또 누구라고요 예 마지막에 구원받는 성도들 이것은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있는 말씀인데요.
그러면 여기 고린도후서 11장을 한번 보겠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바로 우리 성도들이 해와가 되어 있습니다.
아담은 예수님 후에 오실 표상, 예수님의 피와 옆구리에서 쏟아지는 피와 물과 그를 통해서 우리가 생명을 이어 받는 것입니다. 이 고귀한 보혈 이 고귀한 주님의 그 성체 예수님의 살과 예수님의 피를 먹지 않고 마시지 아니하면은 우리가 생명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예수님의 우리에게 언약을 주신 그 말씀 그대로입니다.
근데 이것을 없이 하려고 옛날 1900년 전 그때서부터 마귀는 교회 안에 들어와 가지고서는 여러 가지로 구실을 붙여요.
유월절은 이건 유대인의 유월절이다 이건 유대인 유대인하고는 우리 상관할 것 없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했어요? 325년 니케아 회의를 열고 천주교에서 이것을 짓밟아버리고 뭘 갖다 세웠어요? 태양신을 갖다 넣었어요. 12월 25일 태양탄생일을 갖다 집어넣었어요. 또 하나님이 거룩한 천지창조를 하신 하나님의 안식일을 갖다가 이건 유대인의 안식일이다 이건 없애라 뭘 갖다 넣었어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일요일 우리 부활하신 날 지킨다.
하나님은 태초에도 나요 태초 여기 태초에도 나란 말 있죠. 이사야 41장 한번 봅시다.
(이사야 41장 4절)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나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에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하나님이 변했어요. 예 옛날에는 안식일이 좋다고 하고 복준다고 얘기 말씀하시고 낸중에는 딴말로 복준다고 그렇게 해요. 하나님은 변함이 없어요.
(히브리서 13장 7절)에 보면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하나님은 변함이 없다고 히브리서 13장 7절이요 8절서부터 보겠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니라.” 1900년 전에는 안식일이 좋다하고 그 후에는 일요일이 좋다하고 그전에는 유월절 좋다하고 이제는 12월 25일 태양 탄생일이 좋다하고 천지는 변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멜기세덱의 반차 이 생명의 떡을 갖다주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영광 돌리시고 이것은 몇 가지 우리 특색이 있느냐 유월절에 대해선 몇 가지 특색이 있습니까? 유월절이란 것은 넘을 월자 건널 월자 넘어간다 재앙이 지금 천사가 재앙을 가지고 오면서 막 쏟아져요. B29가 소위 당공격기로 말이지 막 쏟아내는데 꼭 콩죽 먹고 설사하는 사람같이 좔좔 쏟아질 때 말이죠. 그 피발린 집은 넘어가요 넘어가 그 넘어가는 것이 바로 유월절이야 넘을절이야 이것이 특색이 있고 그 다음에 하늘 나라갈 때 뭐 봅니까? 뭐 봐요? 뭐 기차표 가지고 들어가요? 비행기표 가지고 들어가요? 하나님의 인이 있어요.
하나님의 인 요한계시록 14장 1절 하나님의 인침을 받는데요. 어떻게 인침을 받느냐?
(요한계시록 14장 1절)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 이름 쓴 것이 있도다.” 바로 하나님의 인을 받아야 되요. 하나님의 인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그렇게 만들어놨어요 우리는 그걸 받으면 됩니다. 어떻하든지 하나님의 주실 바 이 은혜의 축복을 혹시나 우리가 소홀히 해서 그 생명책의 이름이 흐려지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