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 중

이탈리아 메네치아의 상인이자 여행가인 마르코 폴로는, 1254년 보석상인 니콜로 폴로의 아들로 태어났다. 1271년 아버지와 숙부인 마페오 폴로를 따라 동방 여행을 떠났다.

동방견문록중 한국,일본이 있는 동방에 대한 기술

치팡구 섬

치팡구(일본국?)는 대륙으로무터 1500마일 떨어진 동쪽 공해 가운데 있는 아주 큰 섬이다. 주민은 피부색이 희고 예절이 바르며 우아한 우상숭배자로서, 어느 나라 군주에게도 예속되지 않는 독립국을 이루어 자기들의 국왕을 받들고 있다. 이 나라에는 도처에서 황금이 산출되므로 이 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막대한 황금을 소유하고 있다. 대륙으로부터 이 나라로 간 상인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막대한 양의 이 황금은 아직 한 번도 나라 밖으로 반출된 적이 없다. 이와 같이 막대한 황금이 그 나라에 현존하는 것은 모두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어 이 섬나라의 국왕이 사는 한 궁전의 훌륭한 모습에 관하여 이야기해 보겠다. 이 국왕의 커다란 궁전은 그야말로 순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럽 사람들이 집이나 교회당의 지붕을 연판으로 잇는 것처럼 이 궁전의 지붕은 모조리 순금으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그 값어치는 도저히 평가하기가 불가능하다. 궁전 안에 있는 수많은 방의 마루도 모두 손가락 두 개 폭의 두께를 가진 순금으로 깔려 있다. 이밖에도 넗은 객실의 천장이라라든가 창틀도 모두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사실 이 궁전은 이처럼 측정할 수 없는 호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으므로, 설령 누군가가 그것에 대해 평가를 한다 하더라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나라에는 다량의 진주가 산출된다. 장미빛을 띠고 있으며, 둥글고 대형인 아주 아름다운 진주이다. 장미빛 진주의 값은 흰 빛깔의 진주에 못지 않다. 이 나라에서는 사람이 죽었을 경우 매장과 화장이 병행되고 있다. 매장에 있어서는 이들 진주 한 알을 죽은 사람의 입속에 넣어주는 것이 관습이다. 진주 이외에도 갖가지 보석이 이 나라에서 풍부하게 산출된다. 참으로 부유한 섬나라이며, 그 부의 진상은 도저히 필설로써 형용할 수 없다.


콜럼버스는 이 시기에 13세기 이탈리아 상인이자 탐험가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읽고 몽골 제국의 황제인 쿠빌라이 칸을 만날 생각을 했다. 그의 항해일지를 보면 “이제 ‘그레이트 칸’을 만날 것”이라는 구절이 많이 보이는데 이것은 아메리카 대륙을 중국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리고 피에르 추기경의 책 <세계의 형상>을 읽으며 전문적인 지식을 획득해 나갔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오류가 있는 정보도 있었지만(그 오류조차도 콜럼버스에게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에너지가 되었다.)

그는 드디어 대서양을 가로질러서 동양으로 가겠다는 포부를 세웠고 당시 최고의 지도 제작자로 알려진 토스카넬리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대서양 횡단의 뜻을 품었다. 콜럼버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에스파냐와 인도의 시작은 가까우며, 적당한 바람만 있으면 분명 며칠 만에 닿을 수 있다.” 그가 계산한 수치는 실제와는 4배나 차이가 나는 것이었지만, 이 오류가 위대한 발견의 시작이 될 줄은 콜럼버스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그는 어서 배를 타고 인도에 가 좋은 향료와 황금을 얻고 가톨릭을 전파할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1492년 10월 12일 콜럼버스는 오랜 항해 끝에 신대륙에 상륙했다.

콜럼버스는 원주민들을 인도 사람이라는 뜻인 ‘인디오’라고 불렀고 그곳을 일본이나 중국의 해변이라고 믿으면서 <동방견문록>에 나오는 황제인 ‘그레이트 칸’과 금은보화를 찾으러 돌아 다녔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아메리카를 자신이 죽는 날까지 금과 향료의 나라 ‘동양’이라고 믿었다.